적당함의 기술
미국이 북한이슈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해도 “북한과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대한민국에서부터”이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용납할 수 없다고 공언한 이상, 무력충돌은 피해갈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력충돌은 그 피해가 너무나 크다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먼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전쟁을 옵션으로 생각할 수 있고 북한은 ‘어차피 갈 수 밖에 없는 길’이라는 공격적인 태도로 전쟁을 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한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5천만 시민들은 언제 닥칠 지 모르는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존중되어야 한다. 만약 미국이 동맹국이라고 하면서도 한국의 이런 위급함과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한국인들은 미국을 어떻게 보겠는가?
그러므로 외교적인 방식이 유일한 답이다. 그런데 외교적인 방식으로는 미국이 원하는 것을 전부 얻을 수는 없다. 완전하고, 확인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CVID)는 외교적인 해결책에서는 현실적이지 않다. 2005년 9월 19일 당시 김정일이 다스리던 북한이 안보, 경제, 에너지 지원을 받는 대신 핵무기 개발을 종결하기로 합의했던 과거와는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 2018년 1월 현재 김정은이 다스리는 북한은 핵개발에 성공했고 김정은 정권의 국내 지지기반은 핵능력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김정은은 완전하고, 확인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에 합의하고 싶어도 이제는 할 수가 없다.
미국의 가장 필수적인 전략적 관심은 북한의 핵능력 확대 및 증가를 막는 것이다.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면 미국은 이것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북한은 핵폭탄과 장거리 ICBM시험에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실전배치되기에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시간을 늦출수록 기회는 줄어든다. 경제제재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으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위험을 막는 것이다.
그 첫번째 조치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테스트 및 개발을 즉시 동결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북한이 핵분열물질과 핵탄두 생산중지 -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 에 합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의 모니터링 등 확실한 확인 작업이 있어야 한다. 셋째, 동결은 제3국, 더 중요하게는 미국에 적대적인 비국가단체들에게 핵을 확산시킬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핵을 외부로 반출할 의도가 없다고 여러차례 단언해왔지만 국제사회의 확인작업을 통해 북한을 사전에 모니터하고 확인해야 한다.
또한, 북한이 동결에 합의하면 북한에게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요구를 들어줄 필요는 없다. 현재 북한의 주된 요구는 미국이 소위 대북 “적대정책” 을 폐기하는 것이다. 적대정책 폐기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협상이 시작되어야 명확해지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외교적인 장치를 통해 미국이 북한을 침략하거나 북한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해소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장치는 상호불가침조약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완전한 관계정상화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공식연락채널을 만들기 위한 예비단계가 될 수도 있다. 또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거나 축소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제제재 폐기, 더 나아가 경제원조를 요구할 수도 있다.
과거 대북 협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북한과의 협상에서는 일의 순서가 양측의 양보와 요구를 의미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두고 고통스러운 언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 상황을 단번에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상황을 관리하는 데 목표를 둔다면 북한과의 딜은 가능하다. 완벽하게 하려다보면 상황을 좋게 만드는 것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 우선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지점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외교적인 해법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미국 전국방부장관 로버트 게이츠는 ‘똑같은 말을 두 번 사는게 지겹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합의내용을 어길 수도 있고 합의된 내용을 준수하는 기준의 한계를 넓히려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합의가 되어 있고 그 기준에 맞춰서 북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무런 규제 장치가 없는 것보다 북한의 행위를 억제하는 데에는 훨씬 용이하다. 결함이 있는 딜이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출발하기 좋은 조건이다.
또, 딜의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시간은 미국의 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현재 북한문제에 관여하고 있는 주요 국가만 봐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 급부상하는 강대국 중국, 과거 초강대국이었던 러시아, 세계 3대 경제대국 일본, 세계 경제 11위와 활발한 민주주의를 가진 대한민국이 있다. 한 발 물러서서 본다면 명백하게 이 쪽이 우세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북한정권을 좀 지켜볼 수는 없을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현재 북한은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 더, 빨리 변화할 것이다. 북한이 변화하고 남북한이 통일되면 완전하고, 확인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완전한 정상화는 결국 오게 될 것이다. 한민족이 한강의 기적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 그게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장기적인 전략적 이익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길이다.
이 글은 법륜스님의 북한관련 칼럼 시리즈 중 첫번째 칼럼이다.
*글쓴이는 불교승려로서 북한 관련 인도적지원 및 인권 활동을 해왔다. 서울에 위치한 국가안보정책 싱크탱크 평화재단의 이사장이다. 이메일주소는 pomnyun@pf.or.kr 이다.